| 길 위의 사람 |
김수근과 공간 사옥
다양한 예술이 모여 판을 벌이던 ‘공간’은 김수근과 동의어처럼 여겨진다. ⓒ김수근문화재단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은 ‘공간’과 동의어다. 한때 한국의 건축·미술·음악·연극·무용 등 다양한 예술 장르가 모여 판을 벌이던 곳이 공간 사옥이다. 1971년에 건립된 공간 사옥은 창덕궁과 현대건설 사옥 사이에 있다.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은 ‘공간’과 동의어다. 한때 한국의 건축·미술·음악·연극·무용 등 다양한 예술 장르가 모여 판을 벌이던 곳이 공간 사옥이다. 1971년에 건립된 공간 사옥은 창덕궁과 현대건설 사옥 사이에 있다.
담쟁이 넝쿨이 둘러싼 검은 벽돌의 공간 사옥은 자그마한 건축물이다. 그 안에 소극장 ‘공간사랑’과 전시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현대와 고전, 전위예술과 전통 예술이 모여 수십 년간 판을 벌였다. 김덕수의 사물놀이, 공옥진의 병신춤이 대중들에게 첫선을 보인 곳도,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과 한국의 실험음악을 소개하고 연주하는 판뮤직 페스티벌이 열린 곳도 공간사랑이었다. 공간은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를 개최했고, 공간국제학생건축상을 운영했다.
공간 사옥의 커피숍은 예술가들의 사랑방이었다. 헐렁한 셔츠를 걸친 화가 장욱진, 작곡가 강석희, 민속학자 심우성, 프리재즈 색소폰연주자 강태환, 무용가 이애주, 마임이스트 유진규, 공연기획자 강준혁 등 수많은 예술가가 진을 치며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만났다. 김수근의 부인인 야지마 미치코와, 창덕궁 낙선재에서 지내던 이방자 여사가 주로 만나는 장소도 공간 사옥이었다.
공간 사옥에서 종로3가로 내려오는 길, 창덕궁 앞길인 돈화문로는 조선의 메인스트리트였다. 이 길의 좌우에는 국악과 관련된 강습소나 악기 가게가 많다. 근처 운니동에 국립국악원이 있었던 역사까지 떠올린다면 대한민국 국악의 1번지라 할 만하다. 국악의 매력을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띤 현대음악과 연결할 줄 아는 번득이는 감각의 소유자가 김수근이었다. 김수근은 함경도 청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서울에 와서 교동 초등학교를 거쳐 경기중학교를 다녔다. 서울대 공대 건축과에 입학하던 해에 6.25전쟁이 터지자 김수근은 동경으로 가서 동경예술학교 건축과를 다녔다.
대학원은 동경대에서 마쳤다. 김수근의 삶에서 몇 명의 동지를 찾아내라면 그의 자형인 화가 박고석(1917~2002), 대학원에서 만난 동갑내기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1931~), 10년간의 동경 유학 시절에 만난 음악평론가 박용구(1914~2016)를 들 수 있다.
박고석, 이소자키 아라타, 박용구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만 국한하지 않고 주변의 예술을 뭉뚱그려 관통하는 시대정신을 선구적으로 받아들인 르네상스 성향의 문화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소자키는 일본의 예술가들은 물론,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 화가 재스퍼 존스 등과도 교유가 깊었다. 박용구는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부터 작곡가 김순남, 현대무용가 안은미에 이르기까지 한국 공연계의 오랜 역사를 한 몸으로 겪었다. 미술평론을 하기도 했던 박고석은 미술계의 인맥을 뒤에서 과묵하게 잘 연결해주었다.
김수근은 박용구와 합심하여 1966년 종합예술지인 《공간》을 창간했다. 창간호의 표지에 건축, 도시, 예술의 세 단어를 나열했다. 장르를 불문한 여러 필진들이 《공간》에 원고를 보냈고 예술을 주제로 토론했다. 요즘 유행하는 융복합이라는 개념이 이미 이곳에서 실천되고 있었다.
김수근은 세운상가, 서울올림픽 주경기장 등 국책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한편, 예술성이 높은 종교건물인 경동교회, 불광동 성당, 마산 양덕성당과 대학로의 샘터 사옥, 아르코 예술극장과 아르코미술관 등을 설계했다.
그는 바빴다. 2000년도까지 날짜가 인쇄된 그의 달력에는 미래의 계획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 땅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예술공동체를 꿈꾸었던 김수근은 결국 21세기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우여곡절을 거친 공간사옥은 최근 아라리오미술관이 인수하여 예술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황인_ 미술평론가 한양대 산업공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예술과 공학을 융합하는 학제간 전시 기획과 평론에 주력해왔습니다. 서울을 스케치하듯 풀어낸 칼럼 ‘걷다가 홀리다’를 《조선일보》에 연재했으며 요리, 골목 기행 등 삶을 즐겁게 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출처 : 월간샘터 2016년 8월호 (http://www.isamto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