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항아리를 채우는 기쁨 - 숨은 꽃을 닮은 수녀님께

재즈와 민주주의

| 재즈와 민주주의 |

저예산으로 제작되어 지난해 기대 이상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영화 '위플래쉬'는 잘 드러나지 않던 재즈의 속살을 보여준 작품이다. 영화는 훌륭한 재즈 연주란 천재적인 영감과 흥에 의해서, 즉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음악, 예술과 마찬가지로 피땀 어린 노력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 가지 사실과 다른 점은 영화에서 지휘자가 밴드를 일사분란하게 통일시키는 것처럼 그려진 부분이다. 밴드 리더의 역할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특히 영화에서처럼 ‘스쿨밴드’가 아니라 기량이 어느 정도 완성된 프로페셔널 밴드를 이끌 때 그에게는 전혀 다른 리더십이 요구된다.

'위플래쉬'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전설적인 알토섹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Charlie Parker)는 젊은 시절,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가 이끌던 5중주단에서 초인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디지의 트럼펫과 파커의 색소폰은 빠르게 지나가는 음표들을 마치 속사포처럼 쏟아내면서 재즈의 새로운 혁명을 주도했다.

그런데 1945년 파커는 디지의 곁을 떠나 자신의 밴드를 결성하면서 트럼펫 주자로 당시 신인이었던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를 택했다. 디지 길레스피에 비하면 마일스의 연주는 음역, 음량, 빠르기 면에서 턱없이 부족했다.

사람들은 파커가 마일스를 택한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럼에도 파커의 선택은 변함이 없었다. 마일스가 팀을 떠난 후에도 파커가 택한 트럼펫 주자들은 케니 도럼, 레드 로드니 등 모두 디지 길레스피 스타일과는 다른 느낌의 연주자들이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레드 로드니가 파커에게 왜 자신을 택했는지 물었다.

“나보다 당신 음악을 더 잘 연주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잖아요.” 그러자 파커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에게는 너만의 스타일과 음색이 있어.”

레드 로드니의 말대로 찰리 파커의 음악, 소위 비밥(Be-Bop)을 더 잘 연주할 수 있는 트럼펫 주자는 따로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찰리 파커 5중주단의 연주를 트럼펫 주자 때문에 비판하는 사람은 오늘날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찰리 파커와 그의 트럼펫 주자들의 상반된 스타일은 멋진 대조(contrast)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의 연주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마일스 데이비스 역시 이후 40여 년 동안 밴드를 이끌며 인선(人選)에 있어서 탁월함을 보였던 것은 다분히 찰리 파커에게서 배운 것이었다.그는 자신의 여린 트럼펫 사운드를 잘 받쳐줄 만큼 푸근하면서도 클라이맥스에서는 열기를 돋을 수 있는 피아니스트와 베이스 주자, 그리고 드러머를 잘 찾아냈다. 반면 색소폰 주자만큼은 항상 거칠고 에너지 넘치는 사운드의 연주자를 선호했다. 바로 찰리 파커 5중주단에서 파커와 자신이 만들어냈던 대조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가 찾아낸 색소폰 주자가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이었다. 맨 처음에 사람들은 콜트레인의 연주가 너무 거칠고 산만하다고 비판했지만 마일스는 그런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콜트레인이 태풍처럼 쏟아내는 즉흥연주 뒤에 마일스가 나긋하게 트럼펫을 불 때면 마치 소낙비가 내린 후 맑게 갠 밤하늘의 별빛을 보는 것 같은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훌륭한 재즈밴드의 리더는 자신과 정반대의 사람들을 선호한다. 그리고 그를 장악하려고 하지 않고 그의 개성이 마음껏 펼쳐지도록 독려한다. 어디 마일스뿐이겠는가. 듀크 엘링턴은 결코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독주자들을 한데 버무려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자신만의 독특한 빅밴드 사운드를 만들었고, 카운트 베이시는 마치 아무런 약속 없는 즉흥 잼세션을 하듯이 느긋하게 리드하면서 가장 편안하고 흥겨운 리듬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할 때 연주자들의 색깔이 살아났고 밴드 전체의 개성도 잘 드러났다.

재즈가 지휘자를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교향악단의 음악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재즈는 즉흥연주의 음악이며, 개성의 음악이다. 그것은 때때로 불협화음과 갈등을 빚어내지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관용을 베풀 때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다른 차원의 조화를 만들어낸다. 재즈를 ‘민주적인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황덕호 음악평론가. 재즈에 관한 글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 1999년부터 현재까지 KBS 클래식 FM(93.1Mhz)에서 '재즈수첩'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재즈 음반 전문매장 ‘애프터아워즈(afterhours.co.kr)’를 운영했습니다. 저서로는 《그 남자의 재즈일기》 《당신의 첫 번째 재즈음반 12장》 등이 있습니다.

출처 : 월간샘터 2016년 6월호 (http://www.isamtoh.com)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