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4년 8월 영국 런던의 브로드가에서 발생한 콜레라는 불과 열흘 만에 반경 200미터 이내에 살던 주민 5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비브리오 콜레라라는 원인균이 인체 내에 침입한 후 6시간에서 5일간의 잠복기를 거치는 콜레라는 과도한 탈수 증상으로 환자 중 50~70%가 사망에 이르는 19세기의 흔한 질병이었다. 하지만 위의 경우처럼 국지적으로, 급속도로 확산된 유례는 없었다.

알다시피 콜레라는 공기가 아니라 물에 의해 전염되는 수인성 전염병이지만, 당시 과학자들은 별다른 증거 없이 나쁜 냄새가 콜레라를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이를 ‘독기론(毒氣論)’이라고 한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존 스노(John Snow)만은 예외였다.

그는 대담하게도 공기가 아니라 물이 콜레라균의 매개체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가 이런 가설을 세우게 된 이유는 당시에 민영화된 여러 수도 회사가 가정폐수와 산업폐수로 오염된 템즈강에서 아무런 정화장치 없이 물을 끌어다 가정에 공급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독기론을 반박하고 콜레라 예방법을 발견하기 위해 나쁜 냄새가 아니라 분뇨로 오염된 물을 먹을 때 콜레라에 걸린다는 증거를 찾아야 했다. 그러려면 모든 집을 방문하여 어떤 수도 회사로부터 물을 공급받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했고, 물이 얼마나 오염됐는지를 파악해야 했다.

독기론이 우세하던 시절에 전염병이 우글거리는 곳에 발을 들여놓는 것 자체가 자살 행위를 의미했다. 만일 독기론이 옳다면 콜레라가 창궐하는 지역의 공기를 들이마시기만 해도 병에 걸릴 것이 뻔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가설을 믿고 매일 조사에 열중했다. 마침내 그는 콜레라에 걸린 아기의 기저귀를 빤 물이 마을의 공동 펌프에 스며들었고, 그 펌프에서 나온 물을 마신 마을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콜레라에 전염됐음을 입증했다. 펌프를 중심으로 콜레라 사망자가 집중적으로 분포했기 때문이었다. 스노의 입증 덕에 나중에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가 콜레라균을 발견했고 상수원의 염소 소독과 콜레라 예방접종 등이 시행됐다.

콜레라 연구에 뛰어들기 전에 스노는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을 마취제로 사용하는 방법을 실용화했다. 저널리스트인 볼프 슈나이더(Wolf Schneider)가 “전신마취술은 전화나 컴퓨터의 발명보다 뛰어난 문화사적 발전이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것은 위대한 업적이었다. 수많은 사람을 수술의 고통에서 해방시킨 스노는 영국에서 이미 최고의 명의임을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이 네 번째 아들을 출산할 때 마취약을 써서 ‘무통 분만’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그의 위대성이 빛나는 이유는 높은 지위의 사람이라면 으레 가질 만한 권위의식을 스스로 깨뜨리고 신속히 원인 파악에 나섰다는 데 있다. 그는 신발에 흙을 묻히며 전염병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면밀한 실증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전염병에 걸렸음을 감추려는 주민들의 비협조적인 태도, 복잡하게 얽힌 수도 배관, 여러 독기론자의 비아냥거림을 이겨내며 콜레라 확산 과정을 일일이 지도에 그리며 죽음의 땅을 뛰어다니던 모습은 우리를 숙연케 한다.

사스, 에볼라 바이러스에 이어 메르스의 공포가 한반도를 뒤덮고 있다. 정부는 잇달아 대책기구를 설치하며 뒤늦게 대응했지만 확산 방지는커녕 우왕좌왕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한 번도 중동에 가본 적 없는 동물원의 낙타를 격리하는 조치와 낙타 고기와 젖을 멀리하라는 보건 당국의 예방 안내문은 국민들의 조소를 샀다. “정부의 빠른 조치로 길거리에서 낙타가 사라졌다!”라는 농담은 실질적인 예방책과는 거리가 먼 정부의 헛다리 짚기를 풍자한다. 아무 근거 없이 나쁜 공기 때문에 콜레라가 발병한다고 말한 독기론자들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160년 전에 보여준 존 스노의 헌신은 유언비어나 잡으려는 정부의 오류를 아프게 꼬집는다. 바이러스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으름장이 무섭다고 결코 달아나지 않는다.

출처 : 월간샘터 2015년 6월호 (http://www.isamto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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