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이 회를 즐겨 먹는 낙동강 유역과 해안가를 제외한다면, 이제 우리나라에서 기생충 때문에 고생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기생충이 있다면, 그건 바로 개회충이다. 사람에게 사람회충이 있고, 돼지에게 돼지회충이 있는 것처럼, 개에는 개회충이 있다.

사람회충은 사람에서 이렇다 할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십만 년 이상 사람 몸에 적응해 살면서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 게 장수의 비결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회충은 다르다. 사람 몸에 들어온 개회충은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차분히 눌러앉아 어른으로 자라는 대신 유충 상태로 머물면서 보다 나은 환경을 찾아다닌다. 그러다 보니 사람회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증상들이 나타난다. 간으로 가서 염증을 일으키는 정도는 약과다. 눈으로 가서 망막박리를 일으키고, 뇌로 가서 뇌막염을 일으키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게 바로 개회충이니까.

이런 사실이 보도되면 사람들은 개를 버린다. 물론 다른 문제, 예를 들면 임신이나 이사 등으로 개를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개회충 감염도 개를 버릴 만한 좋은 구실이 된다. 그래서일까? 2013년 한 해만 해도 버려진 개들이 6만 2천 마리에 달하며, 올여름에도 피서지에다 개를 버리고 간 사람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2013년 1월 1일부터 반려동물 애완동물 등록제가 시행돼 개에게 목걸이를 채우거나 내장형 혹은 외장형 칩을 부착하게 하고 있지만, 버리겠다는 의지 앞에서 법은 무용지물이다. 문제는 이렇게 개를 버리는 것이 오히려 개회충을 증가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사람이 개회충에 걸리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첫째는 개회충의 알을 먹는 것이다. 개회충에 걸린 개의 변에는 개회충의 알이 아주 많이 들어 있고, 아이들이 흙장난 등을 통해 그 알을 손에 묻힌 뒤 입에 넣음으로써 감염될 수 있다. 유럽에서는 주로 이 방법으로 개회충 감염이 이루어지고, 그래서 흙장난을 즐겨하는 아이들에게서 감염률이 높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아이들은 흙장난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학교를 마친 뒤에도 학원에 가야하고, 짬이 나도 스마트폰을 하면서 논다. 옛날과 달리 흙장난을 할 만한 곳도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어른들이 개회충에 걸린다. 어떻게? 소간을 날로 먹어서이다. 개회충의 알이 묻은 풀을 소가 먹으면 소 역시 개회충이 원하는 장소가 아니므로 유충은 더 좋은 곳을 찾아 여기저기 가게 되는데, 그중 가장 흔하게 가는 곳이 소간이고, 거기서 유충 상태로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소간을 먹는 아시아 여러 국가의 개회충 감염 경로가 바로 이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회충은 집에서 기르는 개에 의해 전파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개가 개회충에 걸리려면 개회충의 알을 먹어야 하는데, 사료 등을 먹으며 자라는 개가 개회충에 걸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니까. 오히려 밖으로 쫓겨난 개가 먹을 것이 없어서 이것저것 주워 먹다가 개회충의 알을 삼키며, 그 몸에서 자란 개회충은 개의 대변을 통해 여기저기에 알을 뿌린다. 그 알이 흙장난을 하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소간을 안주 삼아 소주를 들이키는 아저씨들에게 전파돼 ‘개회충증’이 일어난다. 199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 부쩍 개회충 환자가 늘어난 이유가 뭘까? 아파트 붐이 일었고,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개를 버리기 시작한 게 그 원인이리라.

개를 버리는 일은 그 개를 밑바닥의 삶으로 내모는 잔인한 짓이기도 하지만 개회충을 확산시켜 사람의 건강을 위협하기도 한다. 개를 버리지 않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개를 입양할 때 자신이 이 개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버린 개는 개회충으로 돌아온다.

출처 : 월간샘터 2014년 11월호 (http://www.isamto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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