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虛數)란 제곱하면 음수가 되는 수를 말한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 즉 실수(實數)의 세계에서는 제곱해서 음수인 경우가 없기 때문에 허수의 개념을 금방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왜 허수를 알아야 할까? 왜 고등학교 때 골머리를 앓으며 허수를 배워야 했을까? 배우면서 과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모르긴 해도 수학에 특출한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은 허수의 사칙연산이나 복소수 평면 등의 말을 접하면서 ‘그냥 그런 게 있는갑다’ 하며 기계적으로 배웠을 게 분명하다. 문제집에 나온 문제를 달달 외워 풀 줄만 알았지, 왜 허수를 알아야 하며 그것이 왜 중요한지 배운 적은 없는 것 같다. 허수의 숨겨진 의미를 제대로 가르친 선생님도 몇 안 되는 듯하다. 설명해도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할 거라 여겨서일까, 본인도 잘 모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런 게 대학 입학시험에 나올 리 만무해서였을까?

허수는 어려운 개념이라서 그냥 넘어가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 치자. 그럼 이건 어떤가? 음수와 음수를 곱하면 왜 양수가 되는지 궁금한 적은 없었는가? -1과 -1을 곱하면 1이 된다는 것은 요즘엔 초등학생도 안다. 하지만 왜 1이 되는지 물어보면 과연 몇이나 명쾌한 답을 할 수 있을까? 혹시 이걸 증명할 수 있는가? 당연한 명제에 왜 증명이 필요하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음수 곱하기 음수가 음수이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을까?

‘증명할 필요 없이 당연히 그렇다’라고 약속한 것을 수학에서는 공리(公理)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평면 위의 두 개의 점을 지나는 직선은 반드시 존재한다’가 공리인데, 수학에서 이런 공리는 몇 개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다’라는 논리를 말하지만, 이는 엄밀한 의미의 수학적 증명은 아니다.

소설 <적과 흑>을 쓴 프랑스 작가 스탕달은 음수와 음수를 곱하면 왜 양수가 되는지 이해하지 못해서 오랫동안 괴로워했다고 자서전에 쓴 바 있다. 수학자인 친구들이 그에게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를 괴롭힌 의문은 ‘1만 프랑의 빚에 500프랑의 빚을 곱하면, 500만 프랑이 생기는 건가?’라는 것이었다. 그가 수학에 젬병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수학자 친구들이 수학에 문외한인 스탕달에게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해서였을까? 스탕달을 무식하다고 손가락질할 수 없는 이유는, 내로라하는 수학자들 역시 음수의 개념을 헛갈려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스탕달과 같은 고민을 건너뛴 채 개념을 그냥 흡수한다는 데 있다. ‘무언가를 안다’고 말하려면 그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스스로 이해해야 한다. 퀴리 부부가 발견한 방사성 원소인 라듐이 한때 강장제와 건강식품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아는가? 미국의 백만장자 어브 바이어스는 퀴리 부부가 방사능을 경고했음에도 라듐이 함유된 ‘라디토어’를 수년 동안 천 병 이상 복용했다. 라듐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그는 51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마추어 골프 선수로서 건장한 체격을 가졌던 그는 피골이 상접한 상태로 사망했는데, 두말할 필요 없이 라듐 중독 때문이었다. 그는 어떤 근거로 라듐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믿었던 걸까?

눈으로 관찰했다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블롱들로의 이야기가 단적으로 보여주듯 우리 몸의 감각기관을 사용한 관찰은 객관적이지 못하다. 감각기관이 판단을 명철하게 내리는 방향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으니 사실이다’라는 판단에 스스로 비판적이어야 한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은 별개다. 믿는 것을 증명했을 때 비로소 아는 것이다.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앞선 학자들이 이미 증명한 법칙을 자신이 혼자 힘으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음수 곱하기 음수가 양수가 된다는 사실을 ‘내가 안다’고 말하려면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아마 스탕달이 그랬던 것처럼 머릿속이 괴로울 수도 있겠지만, 이렇듯 단순하고 자명해 보이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답을 구하는 노력이 삶의 지혜를 만든다.

출처 : 월간샘터 2014년 9월호 (http://www.isamto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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