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기다리는 시간이 있습니다. 해가 떠오르는 바로 그 시간,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때를 가장 기다립니다. 해가 뜨지 않는 아프리카는 춥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라고 하면 마냥 더울 것 같지만 사실 햇살이 없는 밤과 새벽은 으슬으슬 춥기까지 합니다. 난방이 되지 않으니 온기라고는 하나 없는 집.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는 나무로 짠 침대 덕분에 조금 막을 수 있지만 달이 지고 해가 뜨기 바로 전, 아프리카의 공기는 싸늘하게 식어버립니다. 그래서 양철로 된 집에 사는 대부분의 아프리카인에게는 그때가 가장 추운 시간이지요.

아이들과 아프리카에 살 때,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둑어둑한 시간에 잠이 깨곤 했습니다. 밖은 아직 어두운데 추워서 잠이 오지 않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면 옆에서 잠든 둘째 아이를 난로처럼 꼭 껴안았지요. 추위에 작은 새처럼 웅크리고 자던 아이도 엄마 품을 파고들곤 했습니다. 아이를 안고 가만히 누워 창밖을 내다보며 해가 뜨기를 기다렸습니다. 얼핏 하늘 저편이 밝아오면 마음이 조금 온화해졌습니다. 곧 따듯한 해가 솟아오를 테니까요.

밤과 낮의 기온 차이가 큰 아프리카 기후에 길들여진 아프리카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인지 해가 뜨면 새들이 힘차게 노래를 합니다. 잠시 후 케냐 사람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일터를 향해 걸어갑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명랑하고 발걸음은 활기가 가득합니다. 그 소리가 들리면 뒤집어쓰고 있던 담요를 내려놓고 저도 하루를 시작하곤 했답니다. 적도의 햇볕은 뜨겁고 모든 물기를 말려버리지만 곡식이 자라야 하고 추위를 피해야 하니, 해가 뜨는 시간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기다려지는 시간입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일 년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도 있습니다. 바로 우기입니다. 건기가 길어질수록 아프리카 사람들은 하늘만 바라보며 비를 기다립니다. 제가 아프리카에 머물던 2011년, 그해는 우기가 많이 늦었습니다. 모든 것이 점점 말라 생기를 잃었습니다. 아프리카를 다니다 보면 일정한 간격으로 있는 커다란 웅덩이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웅덩이는 동물들을 위해 5㎞ 간격으로 파놓은 물웅덩이입니다. 우기에 물이 고이면 건기 동안에 동물들이 그 물을 먹고 사는 거지요. 하지만 건기가 길어져 대부분의 웅덩이는 물이 말라 땅바닥이 갈라졌고 길가의 작은 풀들까지도 누렇게 말라 비틀어졌습니다. 세상이 온통 바싹 말라 바람이 불면 흙먼지가 기둥을 이루며 마을을 지나쳤습니다.

그해 저와 아이들도 비를 기다렸습니다. 신문엔 온통 케냐 북부 지역에 물이 없어 소와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소식뿐이었습니다. 해가 질 무렵 아이들과 저는 발코니에 서서 서편 하늘을 바라다보았습니다. 구름이 몰려오는 날이면 비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뜨곤 했지요. 하지만 곧이어 구름 낀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속이 상했습니다. 붉은 노을은 비를 데려오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구름이 짙고 하늘이 컴컴해져야 비가 내릴 텐데 그해엔 자꾸 붉은 노을만 하늘을 물들였습니다. 기대 그리고 실망, 그렇게 여러 날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투둑투둑…. 창가에 빗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비 냄새가 5층 우리 집 창가까지 올라왔습니다. 우리는 벌떡 일어나 창가로 갔지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빗방울도 제법 굵었습니다. 아이들은 환호를 질렀지요. 창밖을 내려다보니 아프리카 인들이 천천히 빗속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비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말이지요.

언제,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가장 소중한 것들은 달라집니다. 한국에 돌아오니 햇빛도 비도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비가 와도 그만, 햇빛이 찬란해도 그만입니다. 하지만 아프리카를 떠올리면 비도 햇빛도 다 소중합니다. 한국은 이제 장마가 시작되고 뜨거운 여름도 시작됩니다. 내겐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생명만큼 소중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여름은, 아프리카를 떠올려보면 좋겠습니다.

출처 : 월간샘터 2013년 8월호 (http://www.isamto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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